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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9:36 – 10:1-42 예수님 제자와 잃어버린 양 본문에서는 처음으로 제자들을 따로 보내시며 사역을 시키십니다. 하지만 그냥 가라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리라는 용기를 주어 사역에 나가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6)” 예수님은 차라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6) 이것은 추수의 긴박성입니다. 곧 심판이 임하리라는 긴박성. 주변에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에서 떠난 자들은 이전보다 더 상황이 악해진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빨리 손을 쓰면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그대로 받은 자들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8)” 우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평안이 임하며, 우리와 함께 모으는 .. 2021. 1. 25.
마 9:32-34 누가복음 11:14~28 나의 마음의 주인은?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비꼬는 바리새인들이 있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누가복음 11:14~28에 보면 벙어리 귀신을 내쫓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에서는 좀 더 자세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비꼬는 무리는 예수님께서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집)마다 무너진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손으로 귀신을 내쫓으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다”(눅 11:20)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집으로 표현하여, 귀신이 나가고 난 이후에 그 집이 비어 있으면, 이후에 더 큰 귀신이 들어오게.. 2021. 1. 24.
마 9:27-31 눈뜬 두 소경 – 믿음으로 하는 끈질긴 기도는 더 큰 만져주심이 있다. 본문에는 두 소경이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길을 나설때 계속해서 따라오며 예수님께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질렀다고 합니다. (27)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이들에게 응답하지 않으시고 집에까지 가십니다.(28) 아마도 수 십분 또는 한시간 이상 걸었을 수도 있습니다. 집에 들어간 예수님은 물어보십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28) “너희 믿음대로 되라”(29). 예수님은 왜 그 길에서 바로 이들을 고쳐주지 않으시고, 집에까지 가셨을까요? 아마도 그것은 본문에 나와 있는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30)구절에 답이 있을 것입니다. 로마 통치 시절이었던 때에 유대인들을 구원할 메시야라는 존제는 로마 통치를 위협하는 존제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 2021. 1. 23.
마태복음 9: 18-26 우리의 이중성과 예수님의 신실함. 본문에 등장하는 한 관리. 이는 그 직분에서 알수 있듯이 상당히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예수 앞에 나아와 절을 하였다(18) 여기에서 절을 하다의 히브리어 단어는 히쉬타하베(השתחוה) 라는 단어로 구약에 완전 업드리어 “부복하다”라는 뜻이다. 이 관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예수님께 간청을 했는지 짐작이 되는 단어이다. 그 간청의 내용은 “딸이 죽었으니.. 손을 얹어 살려주세요” 이다. 손을 얹다는 구약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단어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거나, 선지자들의 능력이 나타날때, 축복을 할때 등등 손을 얹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분명 이 관리도 손을 얹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보니 이 관리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집에서는 이미 피.. 2021.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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