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홀로 묵상93

마 12:1-8 구약부터 이어져온 하나님의 사랑. 안식일의 주인 예수님은 안실일의 주인이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집 안에 있는 누구나 온전한 쉼을 얻어야 하는 것이 안식일이었으며, 이런 안식은 진정한 사랑이 있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자비, 은혜 (헤쎄드) 라는 단어는 사랑과, 인자함을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자신이 사랑 그 자체이셨음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사랑하셨기에 안식일을 주셨고, 사랑하셨기에 성전을 주셔서 제사를 통해 죄를 사하는 규칙을 정하시고, 그 규칙에 맞게 세상을 구원하시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즉 성전을 지었던 이유도, 사랑이셨고, 안식일을 주셨던 것도 사랑이셨습니다.. 2021. 2. 7.
마 11:25 – 30 진정한 사랑의 멍에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분법을 사용하시고 계십니다.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 / 어린 아이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 /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운 자들 여기에서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은 누구를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본문 위쪽에 보면, 가버나움 벳세다, 고라신을 책망하시고 계신데,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즉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아마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 의해서 집이 지워지고, 그 짐으로 인해서 수고를 하는 자들일 것입니다. 율법과 같은 것을 지켜야 하는 수고. 예수님은 이들을 쉬게 해주신다고 하십니다. 나의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나의 짐은 가볍다고 하십니다. 11장 전체 내용을 보면, 의심하던 세례 요한.. 2021. 2. 7.
마 11:20-24 예수님을 따르려면 버려야 할 나의 삶과 기준.. 본문에서 예수님은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을 호되게 책망하십니다. 책망의 이유는 그들이 다른곳보다 예수님의 이적을 많이 보았지만 회개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된 삶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에 맞게 나의 삶을 방향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예수님의 이적을 받아들여 회개를 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있었기에 예수님의 이적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두로와 시돈은 이방인의 도시로 낙인찍힌 불손한 도시입니다. 또한 소돔은 창세기에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당했던 도시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죄가 있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그런 도시들보다 못한 도시가 바로 고라신 벳세다, 가.. 2021. 2. 3.
마 11:15-19 지혜의 행함은 사랑이다. 제자들에게 의심을 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해주고 난 예수님은 이 세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해도 움직이지 않는 이 세대. 요한의 행동을 귀신들렸다하고 예수님의 행동을 비판하고. 이들은 요한과 예수님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비판을 하게 됩니다. 그럼 왜 그렇게 자신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동무들을 불러 피리를 불어주고, 슬피 울어줄까? 그것은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음탕하고, 우상을 섬겨도 하나님의 사랑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그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자신을 의심하는 요한도, 그 의심의 작은 불씨가 시작되었던 제자들도, 모두가 예수님에게는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느니라”.. 2021. 2. 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