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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묵상/마태복음 묵상

마태복음 9: 18-26 우리의 이중성과 예수님의 신실함.

by 제이 바이블 2021.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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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등장하는 한 관리. 이는 그 직분에서 알수 있듯이 상당히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예수 앞에 나아와 절을 하였다(18) 여기에서 절을 하다의 히브리어 단어는 히쉬타하베(השתחוה) 라는 단어로 구약에 완전 업드리어 부복하다라는 뜻이다. 이 관리가 얼마나 간절하게 예수님께 간청을 했는지 짐작이 되는 단어이다. 

 

그 간청의 내용은 딸이 죽었으니.. 손을 얹어 살려주세요 이다. 손을 얹다는 구약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단어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거나, 선지자들의 능력이 나타날때, 축복을 할때 등등 손을 얹는 모습들이 나타난다. 분명 이 관리도 손을 얹어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보니 이 관리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집에서는 이미 피리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도대체 누가 불렀을까? 관리의 아내가 불렀을까? 아니면 관리가 불렀을까? 

 

아니 이 모습을 보았던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살려달라고 부탁해놓고, 장례를 치르고 있네? 믿음도 없었나 보군!” 이렇게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행동은 달랐다, 간구를 들은 예수님은 그 이후부터의 신실하게 모든 문제를 직접 처리하고 계신다. 예수님에게 생명 살리는 일은 가장 최우선 되는 과제였다. 예수님께서는 비웃음을 무릅쓰고 (24), 잘못 생각하고 있는 무리들을 물리쳐 주셨고, 아이를 살려 주셨다. 예수님은 오직 관리의 간청과, 그 죽은 소녀가 있는 장소와. 그 소녀의 손을 잡는 것이 필요하셨다. 

 

관리의 행동은 칭찬 받을만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예수님께 시선을 돌렸으며, 예수님께 나아왔다. 그리고 간청하였다. 예수님은 그를 따라 나섰다. 하지만 그의 말과는 다르게 그의 집은 이미 장례 준비가 한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신실하셨다. 상황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물리치셨다. 그런 인간의 이중성에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지 않으셨다, 자신이 나서서 모든 것을 물리치시고 영혼을 살리셨다. 

 

어찌보면, 모든 문제는 끝날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 따라 나서시면, 문제는 이미 예수님의 손에 달렸다. 우리는 많은 문제를 놓고 간구를 드린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은 차선책을 준비하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이중성, 우리의 간악함 등 우리의 연약함이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을 막을 수 없다. 우리의 간구에 예수님은 신실하게 다가와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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