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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생활과 풍습/생활과 풍습-유목민

성경속의 ‘광야’ 이미지

by 제이 바이블 2012.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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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야의 나뿐 이미지

-       도피처, 무법지

유목민의 생활의 모습들을 언어에서 많이 찾아볼수 있다 하더라도 성경 문서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그리 대단하게 주목하지는 않는다. 가인의 이야기는 유목생활에 대한 완전한 비난이다.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4: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4: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가인은 아벨을 죽인 처벌로 광야로 추방당하였으며, 그는 광야에서 방랑하며 부랑자가 되었다. 그리고 Wasm’이라는 광야 유목민이라는 표시를 가지게 되었다.

 

아벨이 목자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그리고 대부분 학자들도 그렇게 동의를 한다. 하지만 본문에 보면 그는 양과 염소를 치는, 정확하게 말하면, 족장들과 같이 진정한 유목민농부사이의 경계 정도에 사는 목자였을 것이다.

 

(참조 : 유목민의 분류) 2012/02/25 - [유목민(생활과 풍습)] - 유목민 이해 (Nomadism)

 

가인은 농부였다. 그런 그가 처벌의 의미로 광야로 갔다는 것은 광야의 이미지 자체가 무법자, 또는 이주자들의 도피처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는 사막의 낙타를 키우는 진정한 유목민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시기이다.

 

-       원수와 짐승, 사단의 본거지

이와 비슷하게 광야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는 이야기가 이스마엘이야기이다.

16: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è  그가 사막에 사는 것을 원수로 가득찬 삶으로 표현한 것이다.

 

-       광야는 또한 야생 짐승, 괴물, 사단의 집이다

13:21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13:22 그의 궁성에는 승냥이가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하던 궁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 그의 때가 가까우며 그의 날이 오래지 아니하리라

34:11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 

34:12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34:13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34:14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에 살면서 쉬는 처소로 삼으며 

34:15 부엉이가 거기에 깃들이고 알을 낳아 까서 그 그늘에 모으며 솔개들도 각각 제 짝과 함께 거기에 모이리라

 

-       죄가 내몰리는 곳

또한 레위기 16장의 모든 죄를 지고 가는 염소는 광야로 내몰림을 당하였다.

16: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2, 좋은 이미지

-       하나님과의 신혼의 때

이와 반면에 선지자는 예전 여호와와 약혼을 했던 광야를 유목민의 이상으로 떠올리는 구절도 있다.

2:2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2: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13: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이 예언자들은 그 당시 도시생활의 사치와 안일을 비난한다

3:15 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       황금 시기와 같은 광야생활

이들은 옛날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체류할 때 살았던 것처럼 다시 돌아가는 것이 구원으로 보고 그 시기를 황금시기로 상상하고 있다

2: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2: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       종교적 순결함과 vs. 도시의 부패

예언자들의 이런 태도에서 가나안의 정착문화에 안주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종교 행위를 버리고, 정착민의 풍속에 빠질 위험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광야에서의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을 때의 향수와 같은 기억 때문이기도 한데,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신실하였을 때였다. 하지만 이렇게 광야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는 것은 유목생활 자체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때에 있었던 언약에 대한 신실함과 깨끗한 종교적 삶 때문이었다. 그 깨끗하고 순결하였던 삶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광야에서의 삶으로 남아 잇는 것이다.

만일 선지자들이 광야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유목민의 삶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화된 도시에서의 영향으로 부패한 곳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나중에 쿰란 종파들에게서 나타나고 이후에 초기 기독교인들의 수도원 삶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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