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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역사 지리/이스라엘의 역사

이스라엘의 기원한 시대(2)

by 제이 바이블 201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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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1550 년경의 고대 오리엔트

1. 메소포타미아의 세력다툼

이집트의 중왕조가 붕괴될즈음 메소포타미아는 바빌로니아, 라르사, 아시리아, 마리가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a, 라르사와 아시리아의 팽창

우르 3왕조의 몰락후 아모리 족인 라르사의 왕 야무트발 와랏신(Warad-sin) – 림신 (Rim-sin:1758-1698) 으로 이어지는 왕가는 자신들이 우르 제 3왕조의 전통을 계승하는 자들로 자처하며 특히 림신은 그의 긴 치세동안 건축 및 공공 분야에서 활발한 사업들을 펼졌으며 정복전쟁도 승리로 이끌어 바빌론 영역의 대부분을 그의 통치권으로 확보하였다. 그가 이렇게 권세를 떨치고 있을 때, 바빌로니아에서는 함무라비의 아버지 신 무발릿(Sin-muballit,1748-1729)는 함무라비에게 위기에 처한 자신의 영토를 물려줄수밖에 없었다.

이때 상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마리와 아시리아가 강력한 나라였는데 마리의 왕족은 아모리족, 아시라아의 왕족은 아카드족이이었는데 아후에 아시리아의 왕족도 아모리족으로 바뀌면서 그 첫번째 왕이 삼시 아닷 1 (Shamshi-adad I 1750-1718)였으며 그는 수리아 지중해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마리까지 정복하여 자신의 아들 야스마흐아닷(Yasmah-adad)을 마리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면서 세력을 더욱 강화했다.

 

-b, 마리 시대(1750-1697)

야스마흐아닷의 통치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지므리림(Zimri-lim 1730-1697) 치하에서 다시 강대해져 그 당시의 강대국(바빌로니아, 라르사, 에쉬눈나, 알레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이 마리의 궁전은 불가사의중 하나일정도로 매우 크고 화려하였으며, 그 당시의 행정, 상업 경제 활동들이 상당히 조직화 되어있었음을 문서들을 통해 보여준다.

 

-c, 바빌로니아의 승리: 함무라비(1728-1686)

이렇게 각 나라의 세력이 바뀌는 중에 함무라비가 등장을 하게 되고 그는 여러가지 처세술로 이 혼란한 시기를 돌파하여 바빌로니아의 세력을 정점으로 끌어 올린다. 그는 라르사의 림신을 물리치고 아시리아를 복속시킨후에 마리의 지므리림 에게 눈을 돌려 1697년에 마리도 점령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리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함무라비는 그 일대를 완전히 평정하게 된다.

이 함무라비는 또한 많은 문화적 번영도 일구어 내었는데 그 번영과 함께 바빌로니아의 신 Marduk 도 최고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된다. 이 시대에 눈부실 정도로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법률, 수학, 천문학, 설화, 사전 등 온갖 종류의 지식서들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업적은 역시 함무라비 법전이다, 이전의 Lipit-Ishtar, Eshnunna. 법서들을 새롭게 체계화한 것으로 그 이전의 법률들을 통용할수 있도록 제 정비한것이라 할수 있겠다.

 

2. 고대 오리엔트의 혼란기

이렇게 함무라비의 세력이 커지면서 많은 민족적 이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 이집트도 이방 통치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a, 이집트 : 힉소스 족

힉소스 라는 말 자체가 이방의 수장이란 뜻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민족인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복잡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 당시에 많은 민족의 이동이 있었으며 그 민족의 이동중에는 인도-아리안계의 이동도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 힉소스 족들은 B.C 18세기의 이집트의 혼란기를 틈타 상부 이집트부터 침입을 해서 하부 이집트까지 정복하여 약 100(1650-1542)을 이집트를 통치를 하게 된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이집트에 들어간 시기를 이때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100년의 통치 말기 정도에 테베 출신의 명문 군주들이 자유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으며 아모시스(Amosis 1552-1527)이 제 18왕조를 창건하면서 힉소스 족들은 추방되어지고 아모시스는 팔레스타인의 남쪽 국경인 샤루헨(Sharuhen) 요새까지 함락시킨다.

 

-b, 메소포타미아에서 민족 이동: 주전 17세기, 16세기

이 시기에 유입되었던 후리족(Hurrians)’은 마리문서의 기록에 보면 테그리스지역으로 들어와 수리아, 팔레스타인으로도 후리족이 대거 유입하였다. 이 후리족과 함께 인도-아리안계가 이란과 인도에 정착하는 시기와도 맞물리고 있으며 이들은 빠른 병거들을 이용하여 16세기 정도에 상부 메소포타미아에 미타니(Mitanni) 왕국을 수립하였다.

이 후리족으로 인해 함무라비의 제국은 오래가지 못한것같다. 함무라비의 후계자 삼수 일루나(Samsu-iluna 1685-1648) 때에는 이미 제국이 무너져 있었으며 함무라비가 죽은 이후 일어난 이신(Isin) 왕가의 자손인 일루 마 일루(Ilu-ma-ilu)는 반란을 일으켜 남쪽에 한 왕조를 만들엇다.

 

-c, 힉소스 시대의 팔레스타인

이 시기에 팔레스타인은 힉소스 제국의 일부였으며 많은 종족들의 유입으로 문헌들에서 나타나는 이름들을 보면 셈족이 우세하기는 해도, 후리족과 인도-아리안 족의 이름들도 등장한다. 어떤 학자는 성경의 히위족, 브리스족, 기르가스족을 이 후리족으로 보기도 한다. 이 무렵 족장을 중심으로 산 아모리족의 반 유목민적 삶은 사라지고 많은 도시들이 건설되고 요새화된다.

 

-d, 헷 족속의 고왕국과 바빌로니아 몰락

이집트는 18왕조가 들어서면서 암흑기는 끝이 나지만 바빌로니아는 1530년경에 멸망하여 바빌로니아 제 1왕조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족속이 헷 족속인데 이들에 대해서 알려진바는 거의 없으며 Hatti 라는 언어도 사용하였다. 이들은 후대에 나타나는 히타이트 족(Hittite)와는 다르고 통상 하티족(Hattians) 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Hatti 어에서 네시안어로 그리고 그 네시안어는 다시 헷어로 그리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헷족속이라고 불렀다. 바로 이 헷 족속의 하투실리스(Hattusilis)의 후계자 무르실리스(Mursilis) 16세기 경에 수리아로 남진하여 얌카드(Yamkhad, Aleppo)를 공격하여 1530년경에 바빌론 제 1왕조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도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소아시아로 물러나게 된다.

 

결론

지금까지 보았던 고시대의 역사들은 족장들의 시대적 상황과 잘 맞물려있다. 이런 역사들을 가지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족장시대의 모습들을 보며 그 시대를 더욱 빨리 이해할수 있을것이다.

출저 : "이스라엘의 역사" 요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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