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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장소 설명/예루살렘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문들 (1) Jaffa Gate=욥바문(Western 1)

by 제이 바이블 201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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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tes of Jerusalem

예루살렘 old city 에는 많은 성문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문들은 그 문이 향하는 방향과 그 문의 위치로 인해 이름이 붙여진것들이 많다. 야포문 같은 것은 그 문을 통해 나아가면 야포를 갈수 있고 역시 다마스커스 게이트도 그렇고 또한 양문이라고 하는 곳은 그 옆에 양들을 사고 파는 장소가 있엇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성문들은 그 자리에서 많은 세월들을 지내면서 많은 역사의 흔적들을 가지고 잇다. 지금 예루살렘 Old city 에 있는 성문들은 어떤 역사들이 잇으며 어떤 이야기들이 잇는지 보도록 하겠다.

 

예루살렘 성문들의 위치


Jaffa Gate = 욥바문, 야포 게이트.

야포 게이트는 옆에 잇는 다윗망대로인해 가장 널리 알려진 문이다. 사실 이 다윗 망대는 성경의 다윗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이며 하스모니안과 헤롯 시대의 요세가 있는 곳이며,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각 시대의 망대로서의 역할을 해왔으며 20세기에 영국 위임통치령때에도 예루살렘은 제어하는 망대의 역할을 하였었다. 지금은 그 망대 안에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여주는 다윗망대 박물관이 있다.

 


Jaffa gate
의 다른 이름들

야포게이트라는 이름은 야포(욥바)에서 걸어서 예루살렘에 올라오면 성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이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아랍이름으로는 “Bab el-khalil” 이라고 부르는데 Khalil 이란 단어는 “Beloved” 라는 뜻으로 헤브론을 가르켜서 아랍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아랍사람들에게 Khalil 은 아브라함을 가르킨다. 즉 아랍사람들에게는 이 야포게이트를 걸어 나가면 헤브론 Khalil 이란 곳에 이르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붙인것이다.

 


성경에서

성경에서의 욥바문은 Hippucus tower 근처에 있었던것으로 보이며 요세푸스 기록에는 “scarcely discernible”(Wars V, 6) 라고 나온다. 골짜기문 ( 2:13, 3:13) 느헤미야가 나갔던 문으로도 나옮.

 


역사

1898Kaiser Wilhelm II(1859-1941) 왕은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는데 그때 그는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올 때 십자군들과 같이 말을 타고 들어오기를 희망했다. 이것은 이슬람의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해결점이 필요했는데 그 해결은 문을 통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틈(gap) 을 통해서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포게이트 옆쪽에 성벽을 허물어 그쪽으로 길을 내어서 Wilhelm II 는 그곳으로 말을 타고 들어오게 되었다. 결국 모슬렘의 교리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만족하는 해결점을 찾은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역사는 그리 달갑게 다루지 않는다 이후 19년 후에는 영국 장교인 Allenby가 예루살렘안의 터키군의 항복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그는 야포게이트 앞에서 그의 말에서 내려 걸어들어오게 된다 이것은 그 당시의 예루살렘의 크리스찬과 모슬렘들에게 굉장힌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Wilhelm II 의 행동을 비난하게 되었다. 아무튼 Wilhelm II 가 들어올 길을 만들 때에는 야포게이트 앞쪽으로 해자(Moat) 이 있었기 때문에 성벽을 허물면서 그 해자를 막아야 했는데 이런 일들을 했던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온 일군들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인해 성을 출입하는데 더욱 편리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마차나 자동차로도 다닐수 있는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길이 만들어진것에 대해 어찌보면 Wilhelm II 에게 감사해야할지도 모른다.. 이 길을 통해서 버스도 다니는데 38번 버스가 유대구역인 Sepharadi Synagugues 근처의 정류장에서 한번 멈추고 계속해서 Dune Gate 로 나가게 된다. 이 버스가 다니는 길에는 작은 아치형의 터널도 지나게 되는데 그 터널에 위쪽에 보면 버스에 긁힌흔적들이 세월만큼 많은 것을 알수 잇다.

 

1948년 독립전쟁대 야포게이트는 많은 공격을 당하였으며 1948-1976년의 휴전선은 야포게이트 밖쪽으로 만들어져서 그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게 되었다. 요르단이 점유하고 있는 동안에는 야포게이트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애물로 막아서 들어갈수가 없었으며 이 장애물들은 이후 6일 전쟁때 치워지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유대인들이 이 야포게이트의 정비를 마친 그 날이 바로 1차 성전 시대에 예루살렘을 향한 공성이 시작된 tenth of Tevet 의 날이라는 것이다.

 


문의 모습

이 문의 위쪽으로보면 다락방과 같은 조그마한 공간이 잇는데 아래쪽으로는 뚫려 있어서 야포게이트에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을 볼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곳으로 예전 시대에 전쟁이 나면 이곳을 통해 돌이나 뜨거운 기름을 부어서 적들을 대항했던 곳이며 이름은 Killer 라고 한다, 주요 성문들은 이 killer 가 꼭 있다.

 


현대의 모습

야포게이트 안쪽으로 들어가면 많은 상점들과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Austrian Post Office 가 있으며 성안의 첫번째 유대인 호텔인 Amdurski’s Hotel 도 있다.



 

 

욥바문의 모습 멀리 오른쪽으로 보이는게 다윗망대.

wlhelm 2세가 지나가기 위해 만든 선문 옆의 도로, 이 도로를 통해 알렌비도 걸어서 성문에 입성했다.

도로가 만들어지고 도로 오른편 성벽에 만들어진 Killer 들

욥바문 들어가기 전에 아랍어로 슐레이만 대제를 찬양하는 문구가 쓰인 석판.


욥바문의 입구, 안쪽으로 들어가면 "ㄱ" 자의  모양으로 문을 들어갈수 있도록 해놓았다.

문 안쪽으로 들어와서 ㄱ 자 된 구석에서 찍은 사진

성 안쪽에 들어와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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