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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역사 지리/성서 지리

(성서지리) 중앙산지 “갈릴리 산지의 중요 지역들”

by 제이 바이블 2011.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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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산지의 중요 지역들

- 가데스

가나안 도시로 여호수아에게 점령당한 후 납달리 지파에게 분배가 되었다. ( 12:22) 그래서 납달리 산지 갈릴리 가데스라고 구별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20:7)

또한 레위인에게 주어진 도피성( 21:23) 이었으며 디글랏빌레셀이 주민들을 강제 이주하기도 한 지역이다(왕하 15:29)

이곳에서는 로마시대의 신전과, 무덤들이 발굴되었다.

그 위치는 대테로 사페드에서 북쪽 20키로 떨어진 텔 카데스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 세포리

나사렛에서 북서쪽으로 약 6키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250 미터 되는 곳이다. 지변 지역들이 낮아서 돋보이는 곳이며 방어에도 용이한 지역이다. 또한 갈릴리 지방에서 가장 샘이 많은 지역이고 특히 라는 그 이름의 의미답게 주변 지역을 새와 같이 내려다볼수 있는 지형이다.

세포리는 성경에 언급된 적이 없다. 하지만 요세푸스 기록에 B.C 103 년에 로파의 폼페이가 점령한것으로 나오며(고대사 8:338) 이후 64년에 다시 폼페이가 이스라엘을 점령하면서 갈릴리지역의 행정 중심지로 삼는다. 이때부터 세포리는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헤롯이 죽고난 다음에 이곳 유대인들은 소요를 일으키고 헤롯의 별궁을 약탈하기도 하였으며 로마군은 그 소요를 잠재우기 위해 이곳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후 헤롯 안티파스는 그 불탄 세포리를 다시 재건하여 티베리야스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이곳을 자신의 수도로 삼는다.

하지만 이후 유대 1차 반란(A.D 66-70)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와서 새로운 유대인 중심지가 되었으며 산헤드린 공의회가 모이기도 하는 곳이 된다. 이후 하드리안은 이 도시를 자유도시로 인정하게 되고 비잔틴시대에는 이곳에 교회도 세워지게 된다.

 

- 가나

신약 시대의 가나가 있었던 위치는 두 장소가 주장된다. 한곳은 교회에 의하여 주장되는 나사렛 북동쪽으로 약 6키로 떨어진 곳이며 두개의 돌로 만든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다. 이 항아리가 바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던 6개의 항아리중 하나라고 한다.

다른 위치는 나사렛 북쪽으로 약 15키로 정도 떨어진 키르벧트 가나이다 이곳은 벧 네프타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지 주민들은 오늘날 까지도 갈릴리의 가나라고 부르는 곳이다. 둘중 후자쪽이 더 신빙성이 잇는데 그 이유는 요세푸스 기록에 로마군과 대항할 때 이곳을 그의 본부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아직 발굴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곳에서는 로마시대의 도자기들이 보이기도 한다.

가나는 나다나엘의 고향이었으며( 21:2) 그는 이후 바돌로메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던 기적이 있었던 곳이며( 2:1-11) 후에는 병든 왕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기도 하심( 4:46-54)

 

- 나사렛

예수의 고향이었던 곳이며 북쪽의 투란 분지와 남쪽의 이즈르엘 계곳 사이에 위치하고 있음, 산지의 평균 높이는 약 400 미터이며 그 계곡들에는 부드럽고 비옥한 토양이 있다. 이즈르엘쪽의 경사지는 가파른 편이며, 그 이스르엘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즈르엘 계곡 쪽에 가파른 산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그 이름은 케둠밈으로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산이다( 4:28-30)

나사렛은 행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으며 또한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예수님은 이집트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정착하여 살았다( 2:19-23) 하지만 이 동네가 신약시대에는 그렇게 중요하게 평가받지 못하였다. ( 1:46), 나사렛이 구약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포로기 이후에 생긴 동네일것이다. 아마도 나사렛에 살던 사람들은 가난하고 다른 동네의 일군으로 살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며 그래서 사람들이 하찮게 취급했던거 같다. 이 나사렛은 4세기 까지도 작은 마을이었다가 비잔틴 시대에 이곳에 큰 교회가 세워지면서 커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636년 아랍에 의해 무너지고 십자군들에 의해 다시 세워진다. 이후 1730년 새로운 교회를 지었으며 1877년 이를 증축 1955년 근동에서 가장 큰 교회를 신축하엿다.

이 나사렛에는 예전부터 사용하였던 샘터가 있으며 그 샘은 지금도 나사렛 사람들의 식수로 이용하고 있고 예수와 그의 가족도 분명 이 샘에서 식수를 길렀을 것이다. 이 샘터 위에는 성 가브리엘 교회가 세워졌으며 전승에 마리아가 이곳에서 가브리엘에게 수태고지를 받았다고 한다.

 

- 힛틴의 뿔

티베리아에서 서쪽으로 약 6키로 떨어진 지역이며 고대시대부터 마을이 있었던 곳이며 그곳의 봉우리는 326미터 높이이다. 어떤이는 구약의 가나안 연합국가중 마돈이 이곳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11:1)

이곳은 옛날부터 도로가 교차되는 곳으로 동-, -북의 길이 교차되는 곳이었으며 해안길이 통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많은 전쟁들이 있었던 지역이다.

1187년에는 이곳에서 이슬람 군대와 십자군 군대가 전쟁을 하였는데 살라딘의 승리로 십자군이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축출되는 결과를 가져온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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