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지 순례 장소 설명/갈릴리&북부지역

갈릴리 찌포리(세포리, Tzipori)

by 제이 바이블 2012. 8. 6.
728x90

n Tzippori (찌포리-세포리)

 

찌포리 : “라는 뜻

크리스찬 전승 :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 “요아킴이 이 찌포리 출신이라고 함.

 

찌포리는 갈릴리에서 유대 종교적 영적 중심지로서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6세기 당시의 회당이 발견되었음. 이후 7세기부터 아랍 사람들의 다스림을 받았고 1차 세계대전까지 그렇게 이어집니다. 지금의 동네는 1949년 이스라엘 동네로 세워지게 되었으며 인구는 약 700명 정도라고 함, 지금의 장소는 1992년 국립공원이 되었음.

 

n 역사

이곳은 주전 7 세기부터 앗시리아, 바벨로, 헬라, 페르시아 등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며 요세화를 하였던 곳이었다. 104년에는 하스모니안 왕가의 알렉산더 얀네우스에 의해서 유대 도시가 되었으며, 그때 찌포리 라는 이름을 얻게 됨.

이후 37년에 로마 관할이 됨.

 

예수님 당시에 이곳은 굉장히 큰 로마식의 도시였으며 정치적으로 활동이 왕성했던 곳이었음. 고고학자들은 예수님도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였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함. 예수님 시기는 헤롯 안티파스의 시기인데 바로 이전 시기에 헤롯 대왕이 죽으면서 이곳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그것을 진압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또는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음, 그런 도시를 받은 헤롯 안티파스는 이곳을 잘 정비하고 도로도 다시 깔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엿을 것.

66년 유대 1차 항쟁에 가담하지 않은 도시로서 파괴되지 않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오게 됨. 또한 다시 132년의 바르 코크바 항쟁에서도 이 도시는 항쟁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이곳으로 다시 많은 유대인들이 피난을 오게 되엇음 그때부터 이곳에 많은 유대인들이 살면서 종교적 영적 중심지가 되었음. 우리가 잘 알고 잇는 미쉬나의 편집자중 한사람인 랍비 예후다 하 나시도 이곳에서 지내다가 이후에 티베리아스로 가게 됨.

하지만 이 도시는 363년 의 갈릴리에 있었던 큰 지진으로 인해 많이 무너지게 되지만 바로 재건하여 더욱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몰려오게 되었고 유대 공동체는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n 고고학

로마 극장, 두개의 교회, 십자군 성채, 40개 정도의 모자이크.

 

n  찌포리 회당

모자이크가 많이 발견된다.

첫번째 장면은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아이가 있을것을 이야기 하는 장면,

두번째 장면은 Zodiac (12궁도) 가욷에 태양이 있고 하나님께서 우주의 주관자라는 것을 나타냄

세번째 장면 (bema 근처) 아마도 언약궤를 나타내는 듯한 그림, 향신료 삽과 집게 예루살렘 성전에 쓰이는,

이 세 장면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신다는 것이며,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후에 성전을 다시 지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것이라는 종말론적 메시지임.

이런 메시지를 답고 있었기에 비잔틴 시기 당시에 유대인들이 회당 안에 이런 호화스러운 모자이크로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였음, 그리고 이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예루살렘에 새로운 성전이 지어지고 유대인들은 다시 번영할것이라는 믿음이 잇었던 것이다.

그런데 회당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지 않다. 이것은 특히 지형적인 영향이 겄지만, 나아가서는 당시에 방향에 대한 의무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비잔틴 시대에 더욱 자유롭게 회당이 지어진 것을 잇다. 회장 안에는 많은 모자이크들로 치장이 되었고, 모자이크들은 유대인들의 많은 상징과 표시들을 가지고 있엇다.

 

n  극장

1930년에 시카고 팀에 의해ㅐ서 발굴이 되엇으며, 이후 발굴이 중단되었다가 1985년 다시 발굴이 되었음. 이곳의 좌석은 약 4500개이며, 70미터 길이이며, 오케스트라 방이 있고, 특이한것은 방수포로 무대가 잇다는 것.. 이것은 아마도 무대위에 물을 채워서 공연을 하였던 것으로 보임.

 

 

n  로마 요세

12세기에 십자군에 의해서 지어진 것으로 석관과 헤롯시대의 돌들을 이용해서 지은 건물임, 1187년 살라딘에 의해서 파괴됨.

18세기에 오마르에 의해서 다시 재건되어 휏불을 놓는 장소들도 만들어짐.

주위를 보면서 설명이 가능함.

 

n  Villa (The Dionysus House)

궁전같이 큰 빌라는 약 200년 정도에 지어지고 363년 지진에 의해서 무넌짐.

1, Cetrall hall (Triclinium) U 자 형태의 앉을 수 잇는 의자와 가운데의 모자이크가 잇음 모자이크를 즐기면서 술을 마실 수 잇는 장소.

2, Dionysus (와인과 사교의 신) 의 모자이크 있음.

3, 15개 중 11개의 그림이 새겨진 panel 이 있음.

4, 성적 모자이크는 없음 즉 유대인의 취향으로 만들어진 모자이크

5, “갈릴리의 모나리자모자이크 굉장히 정교하게 디자인된 모자이크 이것은 아주 작은 모자이크 조각 (Tesserae) 가 사용되었기에 가능함.

6, 동쪽 방 게오메트릭 디자인.

7, 북쪽 방 매일 이용하는 방

8, 화장실 - 그릭 인스크립션에 “Hygieia” 라는 글자가 쓰였는데 이것은 “health” 를 나타내는 것으로 탈무드에서는 누가 부자인가를 이야기 할 때 옥외 변소를 가진자가 부자라고 언급함(Baby-Shabbat 25b)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랍비 예후다가 장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 집이 그의 집이었을 거라고 이야기 함.

 

n  나일 집

5세기에 건축된 집으로 나일강의 축제를 묘사한 모자이크로 유명하다.

이 모자이크는 나일강의 물이 가장 높은 수위에 도달했을 때 이루어지는 축제를 묘사하고 있다. 모자이크에서 남자는 나일강을 상징하고 여자는 이집트를 상징함. 아마도 이 방은 물과 관련된 축제를 위해서 만들어진 방으로 보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