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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장소 설명/에브라임,베냐민산지

베냐민-에브라임 산지-실로(Shiloh)

by 제이 바이블 201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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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Shiloh (실로)

고대 실로는 에브라임 산지에 있었으며, 예루살렘 이전의 종교적 수도역할을 하였다.

 

n Location

사사기에서는 벧엘의 북쪽, 벧엘 세겜의 도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잇다고 적고 잇다. ( 21:19)

 

n Role

이곳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았던 곳이다. ( 18:1)

이곳에 성막이 지어지고, 이후 언약궤는 블레셋과의 에벤에셀 싸움에서 탈취당한다(삼상 4:3-5)

 

실로는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지였다. 이곳에 모여서 절기도 지켰으며, 제의도 드렸다. 이후 사무엘이 엘리에 의해서 이곳에서 자라고, 어린 나이부터 예언을 하기 시작함. 하지만 이는 레위 족속이 아니었기에 제사장은 아니엇다. 하지만 이후 실로에 블레셋이 쳐들어와서 성막은 기브온으로 옮겨진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약궤는 기럇 여아림으로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다시는 실로로 돌아오지 않는다.

 

솔로몬 왕이 죽은 이후에 10개의 북 이스라엘은 여러곳에서 지방 성소를 세우기 시작함. 아마도 때 실로도 다시 거룩한 장소로 세워졌을 것으로 보이며, 이 실로는 또한 아히야의 고향이다.

삼상 14: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거기 있었으니 그는 이가봇의 형제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이 되었던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백성은 요나단이 간 줄을 알지 못하니라

왕상 14:2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일어나 변장하여 사람들이 그대가 여로보암의 아내임을 알지 못하게 하고 실로로 가라 거기 선지자 아히야가 있나니 그는 이전에 내가 이 백성의 왕이 될 것을 내게 말한 사람이니라

 

실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장소엿다.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모여 언약식을 거행했으며, 엘리제사장이 죽기 전까지 이곳으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의를 드리기 위하여 모였다. 아마도 일년에 3번씩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으로 와서 제사를 드려야 했을 것이다.

 

n Archaeology

이곳은 1922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으며, 1980년데 핀켈쉬타인의 발굴로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1998년 회당을 발견하였으며, 이 회당은 탈무드 시대의 것으로 모자이크 바닥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실로는 성경 시대에 굉장히 넓게 성벽으로 둘려진 곳이었으며, 오일 프레스등이 발견되었다. 특히 성소가 있던 장소 아래쪽으로는 많은 물 저장소들이 발견이 되엇다.

 

n City Gate  

남쪽에 위치하고 잇으며, 가나안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보임. 1985년 핀켈 쉬타인은 요세, 가나안 성벽등을 발굴하였다. 이 성벽은 5.5미터 정도의 크기라고 함.

 

n Synagogue  

텔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갈릴리의 탈무드 시대의 회당들과 같은 모습으로 지어졌음. 세개의 문이 있으며,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

 

n Tabernacle (북쪽 언덕)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이 회막은 출애굽기에서 언급한 이동하는 성소이다. 이 성소는 이곳에 약 369년동아 있엇다고 한다. 탈무드(Zevahim 119) 에 따르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좀더 영구적인 건물로 세워졌다고 하는데 미쉬나에 보면 (Zavahim 14) “실로에 지붕이 없지만 아래쪽은 돌 위쪽은 천으로 이루어진 휴식 공간이 있다라고 적고 잇다.

1873년 윌슨은 북쪽 언덕을 이 회막의 장소였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항공사진을 보면 이 북쪽 언덕의 돌들이 깍여졌음을 볼 수 있고, 윌슨의 측량에 따르면 ( 235미터) 길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의 지정학적 위치와 예루살렘 성전산의 지정학적 위치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즉 둘다 골짜기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위쪽에 높은 언덕이 있으며, 골짜기로 둘려 있다.

 

 

n 선택의 이유

왜 여호수아는 이곳을 택하였을까? 아마도 이곳은 다른 이교적인 제의 전통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기 때문에 선택된 듯하다. 아마 이전에는 길갈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임 장소였을 것이며, 산지를 점령하고 난 이후에 이곳에 회막을 세웠을 것. 이곳은 한 대제사장에 의해서 세습되는 형식의 성직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삼상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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