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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장소 설명/예루살렘

성묘교회 - Holy Sepulchre - 일반역사

by 제이 바이블 2012.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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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묘교회

초기의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묻혔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루살렘의 바위 굴. 그 무덤은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인 성 헬레나에 의해서 「발견되었다」고 하며, 335년경에 최초의 「성묘교회」가(보다 정확하게는 아나스타시스의 교회 또는 부활교회) 헌당되었다. 614년 페르시아인이 이 최초의 교회를 파괴한 후, 626년에 새로운 교회가 완공되었지만, 이 건물은 10세기와 11세기에 아주 심하게 파손되었기 때문에 1050년경에 세 번째 건물이 세워졌다. 이 교회 자리에 십자군이 1130년경 갈보리의 유적을 포함하여 주변의 모든 성지를 망라하는 훨씬 더 큰 건물을 세웠다. 이 건물은 또 1310년에 개축된 후 1808년의 화재로 일부가 파괴되었다. 현재의 교회 건물은 대부분 1810년부터 건립된 것이다.


이 교회의 본 건물은 양반부(兩半部)로 되어 있다. 즉 서쪽에 성묘 위로 건립된 둥근 지붕의 건물이 있고 동쪽에 본 교회가 있다. 또한 여러 개의 부속 예배당과 고대의 많은 기독교인을 모시는 사당들도 있다. 일요일 아침 온갖 종류의 전례가 모두 음악소리를 내며 동시에 전개되고 있을 때의 광경은 기독교 세계에서 독보적인 것이다. 여기서는 또한 수난주간의 전례가 상이한 교회들에 의해 거행되는데, 교회마다 그 교회 특유의 의식으로 그리고 그 교회 나름의 역법으로 정해진 날에 거행한다. 성공회원들은 희랍정교회 당국의 허락을 얻어 19세기 말 이래로 갈보리 유적 위에 서 있는 「아브라함 예배당」에서 성만찬 의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현시가(現市街)가 신약성서 시대의 그것과 약간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 기인한다.

1832년까지는 이스람측은 모든 순례자로부터 입장료를 받았다. 그후 라틴교회,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공동으로 매년마다 통과세를 지불함으로서 입장료 없이 출입할 수 있게 되었고 1917년 영국의 알렌비 장군에 의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좀더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1949년 요르단 정부에 의해서 회교도인들도 출입할 수 있게 되었고, 1967 6일 전쟁 이후에는 유대인들도 출입이 허가되었다. 이리하여 오늘날에는 새벽 4시부터 저녁 7시까지 누구든지 자유로이 성묘교회를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앞마당
오래된 물 저장고 위에 만들어진 뜰로서 전에는 채석장이었다. 마당이 포장된 것은 12세기경이다. 이 앞마당을 막는데 사용되었던 원주 기둥들이 아직까지 마당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성묘교회에 대한 동영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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