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 생활과 풍습/생활과 풍습-가족

성경 속 결혼 풍습-‘시형제 결혼’

by 제이 바이블 2012. 6. 3.
728x90

 

 

 

-       시형제 결혼

신명기법에 따르면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 남자 후손을 두지 목하고 죽을 경우, 생존한 형제들 중의 장자가 과부된 형수를 아내로 맞아, 이 새 결혼에서 태어나는 장자는 법적으로 죽은 자의 아들이 된다. 그러나 시동생은 그 도성의 장로들 앞에서 시형제결혼을 포기하는 선언을 함으로써 이 의무를 모면할 수 있다. 이럴 경우에 그는 자기의 위신을 읽호, 모욕을 당한다. 여기서 수모를 당한 그 과부는 시동생의 신발을 벗기고 그의 빰을 친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 형제의 집을 다시 세우지 않기때문이다.

25: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25: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25: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25: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25: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25: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이 규율을 시형제도 = Levirate’ 라고 부르고 라틴어로는 levir 라고 적으며, 이 단어는 히브리어 yabam (brother- in-law) 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에 대한 예문들이 두 곳밖에 없는데, 이것들은 해석하기가 힘들고, 일정한 의미에서만 신명기의 율법에 상응하는 것들이다. 그 이야기들은 다말과 룻의 이야기다.

 

-       다말 이야기

유다의 장자인 엘은 자기의 아내인 다말에게서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고 그의 맏동생인 오난은 이 시형제도로 인해 자기가 낳을 자식이 자신의 자식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을 알고 다말과의 잠자리에서 땅에 사정을 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임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이 죄 때문에 그를 죽인다

38: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38: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38: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38: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38: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이 시형제도에 의하면 유다는 다말에게 마지막 아들인 쎌라를 주었어야 하는데 그는 이 의무를 기피한다, 아마도 마지막 아들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11) 이후 다말은 속임수를 부려 그의 시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하고 임신을 하게 된다(15-19)

 

고대 시대에는 이 시형제 결혼의 의무가 율법보다 더욱 엄격하였던 시대엿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시형제 결혼 의무는 회피할 수가 없으며, 모든 형제들이 서열에 따라 결혼을 해야하며, 아마도 다말의 경우에는 더 이상 시동생들이 없을 경우에는 시아버지에게도 그 의무가 돌아가던 시대의 관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풍습은 그 시대의 다른 민족에게서 행해졌던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 다말의 이야기는 한 여인이 자기 남편과 같은 피의 자녀를 두기 원하는 절망적인 행위와 관련된 것이라고 이해를 해야한다.

 

-       룻 이야기

룻의 이야기 에서도 고엘에게 부과된 의무와 결부도어 있다. 하지만 신명기의 법은 이 이야기에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룻에게는 전혀 시동생도 없고 시아버지도 없기 때문이다. 룻이 어느 가까운 친척과 일정한 규정에 의하여 결혼을 해야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어느 특수한 시대나 환경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즉 거기서는 시형제 결혼법의 준수가 이미 좁은 의미에서의 가정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씨족의 문제가 되어 있다. 즉 여기에서 문제는 죽은 자의 이름을 소생 시키는 것이다( 4:5, 10). 즉 시형제 결혼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망자의 아들에 해당한다.

4:6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       다른 민족에서의 같은 풍습

이런 풍습은 다른 민족, 특히 이스라엘 이웃 민족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런 풍습에 대해서 언급은 없지만 앗수르 법률들은 이런 풍습을 다루고 있다. 이런 풍습의 조항들은 과부에게 자녀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아마 본문간의 시간의 차이 때문인거 같다. 앗수르에서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존의 결혼관계 이외에 약혼관계마저도 포함시키고 잇다. 신랑이 죽ㅇ면 신부는 죽은 자의 형제와 결혼해야 한다.

 

헷 족속의 수많은 법률들도 역시 수혼 결혼에 대하여 말을 하지만, 세부사항에까지는 별로 들어가지 않는다. Nuzu Hurrite (호리 족속 신 2:12) 그리고 엘람과 우가릿에서도 이런 풍습이 확인된다.

 

-       시형제 결혼의 목적

시형제 결혼의 목적에 대해서의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영속되는 조상 숭배의 의미로서 보는 이들도 있고, 장자권 제도의 사회 형태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논쟁이 어떻든 성서에서 이야기 하는 원인은 남자의 후손을 계승시켜 그 이름과 그 을 계속 살아 남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형제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는 첫째 아이만 죽은 자의 아들이 된다. 즉 집안의 재물이 낯선 사람에게 가는 것을 방지하는 의도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25: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25: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