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 골짜기 - 여리고-2
ARCHAEOLOGICAL REMAIN
Tell es׳Sultan: plan of The site and excavation areas.
1 City waH from Early Bronze Age; in west it is built directly above Neolithic wall:
2. Retaining wall of giacis from Middle Bronze Age II;
3• Glacis;
4 Kenyon״• trench I;
5 Trench (I;
6. Trench Ul,
7. Road;
8. Pools near spring
(Diagram and legend are from NEAEHL. p. 675.)
Few remains can be seen on the tell today. They include:
1, NEOLITHIC PERIOD
A city wall, constructed in part of large stones, and a round stone tower which are dated by archaeologists to the 8th millennium B.C. 성벽 바깥의 아래쪽에 있는 돌에 9.5 미터 너비에 2.5미터 깊이의 해자가 바위에 파졌다. 이 타워는 성벽 안쪽으로 붙어 있고 그 중심의 지붕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고 또한 견고하다. 이것은 7.75 미터의 높이에 8.5미터 직경을 가지고 잇다. 이 건축물은 특별이 인상적인데 그 이유는 이 건물이 지어지던 당시의 도구는 오직 돌만을 쌓아 올리는 기술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건물 바로 옆에 흙벽돌 집들이 서로 붙어서 지어져 있었다. 이 집들은 성벽 안쪽과 바깥쪽에서 발굴이 되었으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정착민들은 약 10 에이커 정도에 약 2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II EARLY BRONZE AGE
Portions of a defensive mud brick city wall which surrounded the summit of the tell. 성벽에 많은 건물들의 층이 관찰되었다. 가장 마지막 시기의 방어가 이러우진 층은 아주 급하게 지은듯한 성벽들로 다 지어지고 난 후 얼마 가지 못하여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Middle Bronze I 시기에는 오직 유목민들이 이 지역을 점유한 것으로 보인다.
III. MIDDLE BRONZE AGE II
Remains of an impressive defensive system including a revetment wall, a glacis, and a summit wall. 텔 여리고 기초에 있는 돌 옹벽 성벽의 높이는 약 4.5미터 높이이다. 이 기초 옹벽과 가장 높은 곳의 성벽 가운데에는 약간 경사지도록 지어졌고, 이것은 언덕 자체를 약 35도 정도 각도의 경사를 가지게 만들었다. 이 경사로(glacis)는 플라스터로 칠해졌다. 이 경사로는 일반적으로 많이 부식되어 있지만, 텔 여리고의 북서쪽 코너에 위쪽 성벽의 기초까지 완전하게 채워진 부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Middle Bronze Age 동네는 불에 의해서 심하게 파괴되었으며, 이후 버려지게 된다. Kathleen Kenyon 에 따르면 중기 청동기 말에 이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The artist's reconstruction of the Middle Bronze Age fortifications and the drawing of their location on the tell are from BAR 16/2 [1990], pp. 46 and 47.)
(The schematic cross-section of the Middle Bronze Age fortifications below is from Bible and Spade 12/2 [1999], p. 38.)
NOTES REGARDING THE LATE BRONZE AGE AND SUBSEQUENT PERIODS:
Late Bronze Age 시기는 성경 학자들에게 특별히 관심이 높은 부분이다. 이 시기가 바로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Kathleen Kenyon에 따르면 이 시기의 발견물들은 빈약하다고 한다. 발견된 것들은 Garstang이 발견한 건물들과 부분적으로 발견된 바닥과 Kenyon에 의해 발굴된 성벽등이다. 언덕과 무덤에서 발견된 도자기들은 1400-1380 B.C 이후의 것들로 다른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다른 학설로서는 B. Wood 가 주장한 것으로 많은 고고학자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Wood는 Garstang과 Kenyon이 보고한 도자기들은 LB I 시대의 도자기라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P. Bienkowski는 Wood가 사용한 형식의 것은 특징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시기를 거친 도자기라고 이야기 한다. Wood 는 다른 고고학자들이 LB II Painted ware 로 규정하는 Cyptiot bichrome 도자기를 다르게 주장하는데 그는 그 구조도 지역 도기와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See 11 BAR 16/2 (1990): 44-58, Did the Israelites Conquer Jericho? by B. Wood, and 2) BAR 16/5 [1990] :45-49, 68-69, Battle Over Jericho Heats Up by B.Wood and P. Bienkowski.)
이 시기에는 방어했던 흔적이 없다. 오히려 이 시기에 이곳은 버려져서 심한 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많은 고고학자들은 많은 Early Bronze Age 층을 발굴해내었다.
또한 왕상 16:33-34에 나오는 아합 시기에 벧엘의 Hiel 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다는 9세기의 것은 텔 여리고에 흔적이 없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사람들이 다시 살기 시작한 시기는 7세기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언덕의 가장 위쪽이 아니라 측면에서 발견이 된다. 도자기들의 모습을 보면 이곳은 바벨론 포로기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페르시아 시기의 것들은 빈약하게 발견이 된다. 이것은 페르시아 시기 이후에 이 언덕은 영원히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로마 시대의 동네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현재 동네 아래쪽에 있을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