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결혼 풍습-‘약혼’
n 성경 속 결혼 풍습 – 약혼
약혼은 결혼의 약속으로서, 결혼 전에 이루어지는 약속이다. 이런 풍습이 이스라엘에도 있었으며, 이 약혼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aras ארש (아라스) 로서 구약에 11회 나오는 단어이다.
- 야곱, 이삭
이 약혼에 대해서 역사서들은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이삭과 야곱의 경우를 보면 약간 특수한데, 리브가는 아마 메소포타미아에서 이삭의 아내가 될 약속을 받았던 것 같지만, 결혼은 그녀가 가나안에 도착하여 이삭을 만나자 마자 결혼이 즉각 거행된다
창24: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창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그리고 야곱은 7년동안 기다렸다가 결혼을 하지만, 라반과 특별한 계약을 맺고 있다. (창 29:15-21)
- 다윗
다윗과 사울의 두 딸들의 경우는 비교적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다윗에게 주려고 하여던 메랍은 ‘시간이 되었을 때’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다
삼상18:17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맏딸 메랍을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기를 내어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라 하니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게 하리라 함이라
삼상18:18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누구며 이스라엘 중에 내 친속이나 내 아버지의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 하였더니
삼상18:19 사울의 딸 메랍을 다윗에게 줄 시기에 므홀랏 사람 아드리엘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그리고 미갈의 경우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양피 100개를 사울에게 가져오면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다윗은 시간이 되기 전에 그 약속을 지킨다.
삼상18:26 사울의 신하들이 이 말을 다윗에게 아뢰매 다윗이 왕의 사위 되는 것을 좋게 여기므로 결혼할 날이 차기 전에
삼상18:27 다윗이 일어나서 그의 부하들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 이백 명을 죽이고 그들의 포피를 가져다가 수대로 왕께 드려 왕의 사위가 되고자 하니 사울이 그의 딸 미갈을 다윗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 약혼에 대한 율법
율법의 본문들은 약혼은 인정된 풍속이었으며, 법적인 결과들을 지닌 것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신20:7에 의하면 젊은 사람이 처녀와 약혼은 하였지만,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전쟁의 싸움에서 면제가 되었다.
신20:7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 약혼녀의 강간의 경유 율법
그리고 다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약혼녀의 경우를 신 22:23-27에서 법률로 다루고 있다.
신22:23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신22: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22:25 만일 남자가 어떤 약혼한 처녀를 들에서 만나서 강간하였으면 그 강간한 남자만 죽일 것이요
신22:26 처녀에게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 것은 처녀에게는 죽일 죄가 없음이라 이 일은 사람이 일어나 그 이웃을 쳐죽인 것과 같은 것이라
신22:27 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난 까닭에 그 약혼한 처녀가 소리질러도 구원할 자가 없었음이니라
삼상 18:21에 보면 처녀의 어버지가 선포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은 약혼의 유효성을 증명하는 어구로 보인다.
삼상18:21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하고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
그리고 이렇게 약혼의 유효성이 증명되면 바로 ‘모하르’의 액수가 정하여 지고 보편적인 경우, 정해진 액수를 신랑이 즉시 지불한 것으로 보인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약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기서도 야곤은 ‘모하르’에 상응되는 ‘티트라투’의 지불을 통하여 성립되었으며, 이것은 동시에 법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약혼과 결혼 사이에는 다소 긴 기간이 있었으며, 그 기간 동안에는 약혼자들 중의 어느 편이든지 약혼을 취소 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하여서는 물론 파혼자가 벌금을 부담해야 되었다. 이와 비슷한 풍습이 헷 족속의 법률에서도 표현된다.